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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EBS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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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 2024 8 18 () 오후 1 25

부제: 패튼 대전차 군단 2

원제: Patton

감독: 프랭크린 J. 샤프너

출연: 조지 C. 스콧, 칼 말든

제작: 1970 / 미국

방송길이: 172

나이등급: 15

 

줄거리:

1943년 아프리카 튀니지 카세린 협곡. 미국의 제2군은 사막의 여우 롬멜이 이끄는 최강의 전차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화력의 열세로 밀리고 있다. 이에 패튼 장군(조지 C. 스콧 분)이 새로운 군단장으로 부임한다. 패튼은 브래들리 소장(칼 말든 분)과 함께 느슨해진 부대의 기강을 바로잡는 한편 롬멜의 전차 전술을 치밀하게 분석해서 엘 게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패튼은 제7군을 이끌고 시칠리아로 진출, 독일 최강의 괴링 사단을 물리치고 팔레르모를 점령한 뒤 메시나를 점령하겠다는 공언을 한다. 이에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마이클 베이츠 분)은 패튼의 활약에 공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패튼 또한 몽고메리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승부수를 띄운다.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상륙작전을 감행해서 많은 사상자를 내며 메시나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전투로 인한 신경쇠약으로 야전병원에 있던 병사를 구타했던 일로 인해 그를 비판하는 소리가 높아지는데...

 

 

주제:

환생을 믿고 자신이 전생에 전쟁 영웅이었다고 믿으며 최후의 전투에서 마지막 총탄에 쓰러지는 것이야말로 직업 군인에게 어울리는 최후라고 생각하는 남자. 전투는 그에게 있어서 삶의 이유이며 전쟁터에서 사라져가는 병사들의 허무한 죽음도 그에게는 승리를 위한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비칠 뿐이다. 또한 목표를 세우면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타협하지 않고 전투의 짜릿함 자체를 사랑하는 전쟁광이기도 하다. 그는 영웅들이 등장하는 마지막 전투라 할 수 있는 2차 대전의 굵직굵직한 전투를 이끌어가며 전쟁영웅에 등극하지만 거침없는 입담과 다혈질적인 기질로 구설수에 오르며 결국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직업군인다운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영화는 20세기에 살고 있지만 머릿속은 16세기의 기사인 타고난 지휘관이자 위대한 시대착오자인 조지 패튼의 불꽃같은 삶을 그리고 있다.

 

 

감상 포인트:

스페인군의 지원을 받아 촬영한 전쟁 대작으로 <지상 최대의 작전>, <발지대전투>, <머나먼 다리> 등과 더불어 전쟁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작이다. 화면을 가득 매운 성조기를 배경으로 패튼 장군 역의 배우 조지 C. 스콧이 등장해서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그는 미국인의 호전성과 승리에 대한 집착, 군인이 가야 할 길과 독일군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증오를 퍼부은 후 무대에서 사라진다. 영화는 잘 알려진 패튼의 에피소드들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으며 드넓은 대지에서 펼쳐지는 강철 전차들의 장엄한 전투 장면을 삽입, 가까이서 봤을 땐 참혹하지만 멀리서 봤을 땐 비장미가 흐르는 전투를 군더더기 없이 묘사했다. 또한 독일의 롬멜, 영국의 몽고메리를 비롯한 2차 대전 영웅들의 등장으로 다큐멘터리적인 리얼함을 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라디슬라스 파라고의 패튼 전기와 브래들 장군의 회고록(A Soldier's Story,1951)을 기초로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을 연출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에드먼드 H. 노스가 공동으로 각본을 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는 주로 스페인에서 촬영되었고 일부는 다른 국가에서 촬영되었는데 고대 카르타고의 도시로 등장하는 장면은 모로코의 고대 로마 도시인 볼루빌리스(Volubilis)가 촬영지이며, 모로코의 군대와 국왕의 환영장면은 라바트(Rabat)의 왕궁에서 촬영되었다. 또한 영국에서의 클럽 개관식 장면은 패튼이 실제로 참석한 너츠포드(Knutsford)마을에서 촬영하였으며 시칠리아와 아프리카로 등장하는 영화 속 장면들은 스페인 남부에서 촬영되었으며 벨기에 장면들은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에서 촬영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 음향상, 미술상,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등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남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음향상, 미술상 등 7개 부문에 걸쳐 수상하였다. 그러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스콧은 영화계 상부구조 전체와 엉터리 서스펜스, 상을 가슴에 끌어안고 우는 배우들이 싫다며 수상을 단호히 거부했다. 참고로 그 상은 패튼 장군 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다. 그는 이전에도 살인자의 해부 Anatomy of a Murder(1959) 허슬러 The Hustler(1961)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2번 오른 바 있는데 허슬러로 후보 지명이 되었을 때도 이를 거부했었다. 스콧은 아카데미상 수상을 거부한 최초의 배우였으며, 나중에 말론 브랜도도 대부 The Godfather(1972)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수상을 거부했다.

 

1986년 델버트 만 감독이 연출한 후속편 <최후의 패튼 (The Last Days Of Patton, 1986)>에서도 조지 C. 스캇은 다시 패튼 역으로 등장하는데 차량사고로 사망한 패튼 장군의 마지막 몇 주를 줄거리로 연출되었으며, TV용으로 제작되어 CBS TV에서 1986 9월에 방영되었다. 전차전투 장면은 스펙터클한 면에선 박수를 줄 만하나 고증 면에서는 참담할 정도인데 미군의 M48 패튼전차가 독일군 전차 대역으로 등장하고, 미군 측 전차로는 M41워커 불독과 M46, M47 패튼 전차가 등장하고 영국군 전차로는 M24 채피 전차가 등장한다. 하지만 현대에 만들어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류의 작품에서조차 독일군 티이거 전차 고증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화 제작비의 한계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넘어갈 만하다. 미국 영화 연구소(AFI)에서 선정한 미국 영화 100년사 역대 명작 영화 TOP 100 89위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 :

<혹성탈출> <패튼 대전차 군단>으로 너무나 유명한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은 1920 5 30, 일본 도쿄에서 미국 선교사 아들로 태어나 미국 TV 황금시대에 활동을 시작한 감독 중 하나다. 그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브로드웨이와 CBS에서 TV 연출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에미상을 수상하면서 경력을 인정받았다.

 

1961 20세기폭스에서 첫 극영화 <여름 세상(A Summer World)>에 착수했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결국 2년 후인 1963년 윌리엄 잉게(William Inge)의 희곡 잃어버린 장미(A Loss Of Roses)’를 바탕으로 한 <스트리퍼(The Stripper / Woman Of Summer)>가 그의 첫 데뷔작이 되는데, 프로듀서인 제리 발드(Jerry Wald)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프랭클린에게 메가폰이 넘겨졌다고 한다. 이듬해 고리 비달(Gore Vidal)의 원작을 토대로, 로스앤젤레스 정치집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온 두 남자의 이야기 <베스트 맨>(64)은 그의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1965년에 제작된 광대한 대서사극 <워 로드(The War Lord)>에서 대배우 찰튼 헤스턴과 인연을 맺은 샤프너 감독은 1968년 그를 다시 주연으로 내세운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68)의 엄청난 흥행으로, 일약 대중적 스타 감독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어 그의 다음 작품 <패튼 대전차군단>(70)은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석권하면서 자신도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촬영감독 프레드 쾨네 캠프와 작업한 첫 작품 <빠삐용(Papillon)>(73)은 인간고립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 프레드 쾨네 촬영 감독과 다시 한번 바하섬을 무대로 가족간의 화해와 유태인 탈주를 그린 <바하마의 별(Islands In The Stream)>(77)을 완성하였고, 이듬해 나치 잔당의 음모를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 <잔혹한 음모(The Boys From Brazil)>(78)를 발표하였다. 또 투탄가멘 묘의 발견과 피라미드를 둘러싼 모험물 <스핑크스(Sphinx)>(81)에 이어 이듬해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예스, 지오지오(Yes, Giorgio)>(82)를 통해 생애 최초의 뮤지컬 영화도 연출하게 된다.

 

그는 몇몇 대작 영화들을 통해 웅장하고 스펙타클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큰 스케일의 서사시적인 작품으로 성공을 거뒀고, 다작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종종 데이비드 린과 비견되기도 한다. 그는 <혹성탈출>의 찰튼 헤스턴이나 <패튼 대전차 군단>의 죠지 C. 스콧, 그리고 <빠삐용>의 스티브 맥퀸이나 더스틴 호프만 등의 배우들이 명연기를 펼칠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연기를 이끌어낼 줄 아는 감독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30년간에 걸쳐 연출 활동을 했던 그는 월남전에서 귀향한 주인공의 방황을 그린 마지막 작품 <웰컴 홈>(89)을 마지막으로 1989 6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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