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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공부해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읽기 : 찰스 다윈과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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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내용의 필사입니다.

방송 : 클래스e

강연자 : 전중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아주 유명한 책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이 비관론과 허무주의를 퍼트린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죠.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본을 후대에 퍼뜨리기 위해서 프로그래밍을 한 운반 로봇이다. 따라서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다. 피를 철철 흘리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라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이 실은 낙관론과 희망을 설파한다고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이런식이죠. 

 

"인간은 이기적으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쳐 보자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이 책에 따르면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협력 사회에서 사는 것이 사실은 각자의 이기적인 생물학적인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길이다. 따라서 배려와 협력을 열심히 가르쳐보자." 이것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고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한 다양한 해석들은 모두 틀렸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책인데요.

 사실은 이 책을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이 책이 어렵게 느껴졌던 겁니다.

이 책은 핵심만 잘 찾아내서 손에 꼭 쥐고 있으면 아주 쉽고 명쾌하게 이해가 되는 책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책이 나온지 40년이 훨씬 더 넘었지만 여전히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겠죠. 

 

오늘은 이 책이 탄생하게 된 학문적인 배경인 다윈의 진화 이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왜 존재할까요?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160년전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내린 답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질문은 종교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신화나 종교 경전에서 그 해답을 찾는초자연적인 설명은, 사실은 아예 설명을 하지 않는 거랑 다름이 없습니다. 

 

자연계의 생명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이들은 마치 어떤 목적을 잘 수행하게끔 기가 막히게, 정교하게 잘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복잡한 생명이 정말로 누군가에 의해서 설계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설계한 인공물에 비교를 할 수가 있을만큼 기가 막히게 복잡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형질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도킨스는 1장에서 생물학자 조지 심슨의 말을 인용합니다.

 

1859년 이전에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던 모든 시도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1859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바로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을 한 해입니다.

 

다윈은 생명의 복잡한 '설계'가 신이나 전 우주의 섭리 같은 초자연적인 설계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과정이 복잡한 설계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여기서 복잡한 생명은요 훨씬 더 복잡한, 더 똑똑한 창조주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거보다 덜 복잡한, 단순한 과정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산에서 애벌레를 발견하면 깜짝 놀라며 질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애벌레를 먹고 사는 새들의 입장에서는 사뭇 다릅니다.

애벌레는 단백질 덩어리입니다. 

 

새들이 보기에는 오동통한 맛 좋은 핫도그가 온 산의 나무마다 주렁주렁 공짜로 매달려 있는 격입니다. 

그래서 새들은 애벌레를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새들에 맞서서 애벌레들은 자신의 몸을 지키키 귀한 다양한 수단을 진화시켜 왔습니다. 

스파이스부시 제비꼬리나비의 애벌레는 엉덩이 윗부분에 뱀의 눈을 닮은 무늬가 있어서 뱀의 흉내를 냅니다. 

 

애벌레의 천적인 새들도 뱀을 아주 두려워합니다. 

 

처음에 이 애벌레의 엉덩이에는 여러 우연한 변이들이 있었을겁니다. 

이러한 변이들 가운데 뱀의 눈을 아주 조금이라도 닮은 변이를 지닌 애벌레들은, 뱀의 눈을 전혀 안닮은 변이를 지닌 애벌레들보다 새들에게 덜 잡아먹혀서 더 잘 살아남는 이득을 누렸을 겁니다. 

 

이렇게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적 변이들이 세대를 거쳐서 계속 누적됨에 따라서 마침내 오늘날처럼 뱀을 꽤 닮은 애벌레들이 만들어졌겠죠. 

 

물론 뱀을 완벽하게 닮진 않았죠.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하게 뱀을 닮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뱀을 더 닮게 만드는 유전적인 변이들이 여러 세대0를 거쳐서 계속 축적이 된다면 결국 나중에는 뱀을 똑같이 닮은 애벌레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일종의 논쟁입니다. 

전제가 참이면 무조건 참인 결론이 도출되는 논쟁의 형태인 것이죠.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런식의 논쟁처럼요.

자연 선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전, 변이, 차별적 성공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무조건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가 일어나는 논리적인 귀결입니다. 

 

첫째, 변이입니다.

사람도 서로 조금씩 다르죠. 

키, 지능, 외모, 성격 등이 제각기 다르듯이요. 이렇게 개체군 내의 개체들은 서로 다 다릅니다. 

 

둘째, 유전입니다.

변이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해진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키가 큰 부모는 키 큰 자식을 낳고, 키가 작은 부모는 키 작은 자식을 낳는 경향이 있습니다. 

 

셋째, 차별적 성공입니다.

어떤 유전적인 변이는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됩니다. 

다른 변이는 해가 되거나 아무런 영향도 없는 것이고요. 

 

결국 우리는 세대가 지남에 따라서 개체의 자식 수를 증가시켜주는 유전적인 변이가 그렇지 않은 유전적인 변이보다 점점 더 흔해지리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라는 것이죠. 

 

어떠한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개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유전, 변이, 차별적인 성공이라는 세 전제만 충족이 되면 무조건 자연 선택이 작동을 해서 개체군이 지금 당장 처한 생태적인 환경에 적응을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먼 과거 조상들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복잡하고 정교한 형질을 '생물학적인 적응'이라고 합니다. 다윈의 이론은 복잡한 적응에 대해서 대단히 강력한 주장, 한마디로 깨지기 쉬운 주장, 반대의 증거가 제시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주장을 펼칩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적응은 자연 선택에 의해서 진화가 되었다는 것이죠. 

즉, 잘 살펴보면 복잡한 적응은 먼 과거 조상들의 생존과 번식을 높인다는 목표를 잘 수행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서 '설계'가 되었음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도킨스도 1장에서 이 점을 이야기 하는데요. 바로 '시카고 갱단의 비유'입니다. 

 

어떤 남자가 시카고 갱단에서 오랫동안 잘 살아 왔다면,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남자일까요?

아마도 틀림없이 성격이 거칠고 총도 잘 쏘고 부하들을 잘 휘어잡는 상남자일겁니다. 

 

마찬가지로 복잡한 형질을 우리가 잘 뜯어보면 우리는 그 형질이 먼 과거 조상들의 생존과 번식에 기여하게끔 잘 '설계'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개체의 번식을 높이는 형질은 흔해진다. 

번식을 낮추는 형질은 사라진다. 

이러한 자연 선택이 복잡한 적응을 만들었다. 

 

다윈의 진화 이론은 이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운 이론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이론은 "적자생존"으로 요약해버리고 맙니다. 

 

이 적자생존이라는 문구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틀렸습니다.

먼저 생존 그 자체는 진화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번식입니다. 

생존은 어디까지나 오래 살면 번식할 기회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의미에서만 제한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갑돌이가 100살까지 무병장수 했는데도 자식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고

반며에 을돌이는 자식을 하나 남기고 나이 20살에 요절했다고 하면 

 

100살까지 산 갑돌이보다 자식을 남기고 일찍 죽은 을돌이가 진화적으로 더 성공을 한겁니다. 

 

이 말은 어디까지나 진화적인 관점에서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한겁니다. 

사람이 반드시 자식을 남겨야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생존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은 아니니 좀 더 중요한 번식만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적자는 단순히 크고 강하고 힘센 개체를 뜻하지 않습니다. 

개체군이 지금 당장 처한 생태적인 환경에서 가장 잘 들어맞는, 가장 번식에 도움이 되는 형질을 지닌 개체가 적자입니다. 

 

한자로도 알맞을 적(適)자를 씁니다. 원래 영어로는 fit이라는 의미이고요. 

적자가 반드시 강하고 힘센 개체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는 작고 약하고 힘이 없는 개체가 주어진 생태적인 환경과 잘 맞아떨어져서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섬에서 토끼들이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죠. 

어떤 토끼는 겁이 많고, 어떤 토끼는 아주 용감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이 섬에 늑대를 아주 많이 풀어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배가 아무리 고프더라도 최대한 안전한 동굴에 머무르면서 기회를 엿보는 겁 많은 토끼가 겁없이 돌아다니는 용감한 토끼보다 번식에 더 유리할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 섬의 토끼들은 아주 겁이 많은 방향으로 진화를 할 것입니다. 

늑대가 많은 섬에서 적자는 용감한 토끼가 아니라 겁이 많은 토끼인 거죠.

 

그러므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올바르게 요약을 하자면

적자생존이 아니라, 현재 처한 환경에서 가장 잘 들어맞는 개체들의 번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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